본문 바로가기

MoNaD/Story

단편 소설 - 어떤 하루

제 1 장 죽었다 생각하라

"원인도 병명조차 알 수 없는 병에 걸려 죽을 확률이 얼마나 될까?"

연거푸어 담배를 피우고 있던 나는 혼자 읊조리듯 내뱉었다.

그냥 평범한 학원 수학강사인 내게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담배를 바닥에  비벼 끊고는 새로 담배를 집어 들었다.

1시간 전.

지독히도 담배 연기를 싫어하던 나는 담배 한 갑을 사서 지금 마지막 담배에 불을 당기고 있는 것이다.

그리 잘 나가는 강사는 아니었지만 먹고 살만하게 수강생들이 들어주던 강사가 아니었는가?

그리 술과 담배를 좋아하지도 않았다.

흔하게 파는 환각제조차 제대로 먹어 본적 없는 내가 아니던가?

근데 내 생명이 고작 5개월이라고 의사가 자기 마음대로 사형선고를 내려버렸다.

단지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말이다.

애초에 병원 같은 곳에 가서 지독한 소독 냄새를 참아 가며 이런 결과를 기대했던 것은 아니었다.

‘가벼운 감기시군요’라든가 ‘목에 가벼운 물 혹이 생겼습니다’ 라든가 하는 대수롭지 않는 병명으로 친구 혹은 가족들에게 투정을 부리 수 있는 권한을 부여받기를 원했다면?

어째든 갓 전문의 자격증에 우쭐해 있던 그 젊은 의사에 자존심에 커다란 스크래치를 남기고 나는 곧 죽는 것이다.

아이들의 방학으로 거의 핏대를 세워가면서 일해야 할 시기에  냉정하게 의사가 휘갈겨 쓴 진통제 처방전을 들고 약국에게  약을 지었다.

약을 짓는 순간에도  미약한 고통만 느꼈을 뿐 약의 필요함을 느끼지 못했는데...

주머니에는 담배를 사고 남은 잔돈과 약 봉투가 들어 있었다.

담배가 두서 없는 생각에 휘둘리고 있는 내 손에서 마냥 재를 양산해 내고 있다.

이제 무엇을 해야 할까?

휴가로 받은 오늘 하루에서 잠 잘 시간을 빼면 아직도 8시간이라는 시간이 내게 주어져 있다.

'아........배고파..................'

이런 상황에서도 배는 고프구나.

왠지 피식 웃음이 나왔다.

그리고 늘 가던 식당으로 발길을 옮기기 시작했다. 

늘 밥을 먹는 곳에서 낯선 정감이 둔탁하게 뇌리를 슬쩍 친다.

이것이 죽음을 앞에 둔 사람들에 공통적 특유의 감성의 변화일까?

평소에 당연하게 여겼던 사물들이  의미가  생기고 하지 않은 일들이 생각 속에서 부유하고  과거 속에서 잊혀졌던 인물들이 불쑥 키워드에 의해서 튀어나오는 그런 진부한 행동방식이 내게도 적용되는구나 하는 희안한 인식.

지독히도 혐오스럽다.

결국은 뇌로 그리고 인식의 뉴런 속으로 내가 죽는 것을 인정하고 말았다는 것이다. 

식당 아주머니에게 항상 주문하던 백반정식과 담배를 주문하였다.

아주머니는 나를 다시금 뜯어보시고는 가볍게 고개를 가로 저었다. 

여자가 거리낌 없이 담배를 주문하는 것이 탐탁치 않은 시선이 존재하는 사회.

젠장... 속이 너무나 쓰리다. 위산이 과다로 인한 고통.

 배가.......... 고프다.

어쩌면 배가 고픈 것이 아니라 단지 공허해서 혹은 담배로 인한 부작용으로 배가 고픈지 모르겠다. (이런 부작용이 있다는 소리는 듣지 못했지만)

병원에서 나온 뒤 줄곧 담배를 물고 있다.

왜 그랬을까? 

사형선고를 받기 전까지만 해도 담배 연기에 질식해 죽어 버릴 수도 있겠다는 웃기지도 않는 생각으로 살고있었으면서. 

5개월이라는 유예기간보다도 더 짧게 살고 싶었는지도.

그랬을지도......

아주머니는 마지막으로 내려놓는 반찬그릇과 함께 담배를 내밀었다. 

담배를 받아 평소에도 항상 그랬던 것같이 자연스럽게 호주머니에 쑤셔 넣고는 숟가락을 들었다.

된장찌개

시금치나물

작은 생선 토막

김치

감자조림

그리고 오늘의 특별 메뉴 불고기 

반찬그릇에  젓가락을 한 번씩 들이밀었고 밥은 어느새 반이나 줄어 있다.

지독한 허기

아니 지독한 공허

전혀 채워지지 않았다.

여전히 배가 고팠고 그건 많은 밥으로 채워 질 무엇이 아니라는 걸 인정해야 했다. 

숟가락을 놓고 물끄러미 밥을 바라보고 보다가  밥알들 사이에 쌀벌레가 죽어 있었다.

그냥 그것은 있는 그대로의 형체를 가지고  밥알 속에서 죽어 있다.

마치 살아서 움직일 것 같지만 죽은 것이다.

돈을 지불하고 식당 밖으로 나와 담배에 불을 붙였다. 

7시간하고도 20분.

어디로 가지? 

벙벙한 면바지에 흰 티

체크무늬 남방

신고 나온 슬리퍼

주머니에 가진 돈 27,340원

이제 어디로 가야하나

집으로

그러기에는 너무나

황당하다.

황당하다는 표현이 맞을지 모르겠지만.

집에는 아무도 없고 죽음을 아름답게 포장해줄 것도.... 아무 것도 없다.

26살의 나이에 가진 것도 없고 줄 것도 없는 상태에 머물러 살았다. 

슬리퍼를 질질 끌고 구멍가게로 안으로 스며들었다. 

소주 한 병과 오징어.

다시 담배를 피우던 공원으로 향했다.

그 자리에는 나를 기다리듯 담배꽁초들이 그 모습으로 있다. 

 왠지 그 자리가 아프게 눈을 찌르고 가슴을 찌른다.

 다시금 떠오르는 혐오스럽다는 느낌.

전에는 이런 생각을 할 시간도 감정도 없었는데

젠장.........젠장맞을.........갑자기..........힘이 하나도 없다.....

서 있을 기운도....아무 것도...........


제 2 장 회상의 파편들


벤치에 술병을 던지듯 내려놓고 털썩 주저앉았다.

젠장.....젠장.... 

머리를 감싸 쥐고 그렇게 한참동안을 앉아 있다가 손목 시계의 째각임을 감상해 보았다.

 6시간하고도 15분. 

비닐봉투를 휘적거려 소주와 오징어를 꺼내 들었다.

소주 마개를 따고 병나발을 불면 예전에도 이런 적이 있었다는 것 기억났다.

처음으로 소주를 마시던 날.

고등학교 때 동아리에서 선배가 연필꽂이에 따라 주던 소주에 기억.

하지만  그 연필꽂이 잔을 거부하였다 단순히 그것이 너무 지저분해서 였다.

선배들에게 눌려 아무 말 없이  연필꽂이 잔으로 마시던 동기들은 나를 공포에 가까운 눈초리로 바라보고 있던 기억.

솔직히 난 선배가 별로 무섭거나 절대 복종을 할 의무가 없다고 생각했다 

좋아서 들어온 동아리에  싫어지면 그냥 그만 두면 그 뿐인 것을 나이가 한두 살 많고 경험이 좀 있다는 것 외에는 그들이 나와 틀리다는 것이, 절대 우위에 있다는 것이 납득할 수 없다.

그들은 단지 중학교 때 입상경력이 조금 있다는 것으로  거의 면접이며 입단 시험에서 특별하게 취급했다.

그건 내가 원하던 바도 그들에게 그렇게 우대 받는 것을 당연하다고 생각지 않았다.

다만  좋아서 그리고 조금의 재능이 있었기에 나온 결과물일 뿐이기에.

그들 마음대로 그 결과물을 포장하고 만족해하지 않았는가 말이다.

그리고 지금 상황에서 그들은 그것을 후회하는 것이다.

이제 다시 자신들의 오만함으로 나를 건방진 후배로 생각한다는 것뿐이다.

" 마셔. 아님 여기서 나가던지 " 동아리의 장이었던 선배는 싸늘한 말로 나를 위협했다.

 피식 웃음이 배여 나왔다.

 병마개가 따진 3병의 소주병을 내 앞에 갔다 놓았다.

그 중에 한 병은 거의 3분의 2가 줄어 있었고 그게  술의 전부였다.

(아직 학생이란 신분에 그리 구하기 쉽지는 않았으리라)

독하게 식도를 욱신거리게 하는  안에 내용물을 연거 푸어서 마셨다.

숨죽여 보고 있는 동기들 , 헉소리를 내면서  바라보는 선배들.

선배와 동기들은 경악에 마지않는 표정을 볼 수 없었다.

 소주는 그 만큼 독하게 나의 정신을 몰아갔다

생전 처음 마시는 소주 두 병 반을 깨끗이 비워내고 연필꽂이에 있던 소주를 선배에게 내밀었다.

 그 다음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거의 일주일동안 술병으로 집에서 앓고 나서는 다시는  동아리에 가지 않았다.

그들 역시 나의 행동에 아무런 말이 없었다.

그렇게 소주는 시작되었다.

지금은 소주 한 두 병 정도는 그냥 가볍게 마신다.

그런 웃기지도 않는 일을 회상하면서  어느새 빈 소주병만을 들고 이다.

'  두서너 병을 살 걸..... '

술병을 손에서 툭 놓아 버렸다.

병이 쨍하는 야멸찬 소리를 냈지만 깨지지는 않았다.

안주는 오징어 다리 한쪽만 빼고는 그대로이다.


제 3 장 머리 속을 부유(浮游)하는 그들


그대로 소주병과 안주를 등진 채  자리를 떠났다. 

입가에는 담배연기들이 자욱했고 공원에서 힐끔거리는 몇몇의 사람들도 이다. 

4시간하고도 10분. 

발길은 다시 구멍가게를 향해있었다. 

 망각을 사기 위해...

술병들이 비닐봉투 안에서 달랑달랑 나를 따라 공원을 향했다.

그 길을 걸으면서 많은 일들이  거리에서 일어나고 있다.

2차를 향해 걸어가는 회사원들.

교통 사고로 싸우는 사람.


싸움하는 곳으로 달려가는 경찰들.

다정한 연인들.

묵직한 가방을 맨 아이들.

양아치들.

10분 동안 걸어오면서 다양한 사람들의 인생들이 세상에 설치고 있다 느꼈다.

그들은 서로 연관되는 사람들과 엮어 가는 인생들.

나 역시 그런 사람이다.

사람을 기가 질리게 하는  원장.

문제 학생들.

학부모. 

동료 강사들.

연락이 끊긴 가족들.

가족이라.....

23살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집을 나와 버렸다.

아버지의 2번에 걸친 재혼.

지독한 수전노 아버지.

아버지의 여자들은 단 4개월 이상 버티지 못했다 

어머니는 그래도 12년은 버티었지만 다른 두 명의 아버지의 여자들은 그렇지 못했다.

어차피 돈을 보고 달려든 불나방 같은 존재들이었으니 당연한 것일까.

아버지는 내 고등학교 등록금조차 아까워서 벌벌 떨었던 인물이다. 

그래서 장학금을 받을 것을 그에게 말하지 않았다. 

집을 나올 자금을 만든 것도 아르바이트에서 틈틈이 번 것 외에

  단 한 번도 놓쳐 본적은 장학금으로 아버지 돈을 빼돌렸다.

그것은 그에 대한 보복인 동시에 나의 권리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마련한 전셋집.

그렇게  가족과 끝났다.

(가족이라기보다는 타인에 가까웠지만)

지금 현재의 상황 속에서 떠오르는 사람이 유일한 사람이 있다. 

가끔이라도 살아 있는지 확인해주는  사람은 어머니도 아버지도 아닌 두 번째 여자가 데려왔던 막 중학생을 벗어난 남자 아이이다.

그 때나 지금이나 반항적 기질은 변하지 않았지만 그것에 대해 신경 써본 적이 없다.

당시 그 아이는 아버지의 돈을 훔쳐서 가출만 두 번.

그 중에 한 번은  아버지가 감추어 두었던 돈 있는 장소를 가르쳐 주었다. 

두번째 여자가 아버지와 헤어지고 나서도 그 아이는 가끔 나를 불러내서는

  밤새도록 말없이 소주를 마시던 그런 류의 말도 안 되는 우정을 나누었다.

(솔직히 우정이라기보다는 아버지를 괴롭히는 공범과 같은 것이 정확하겠지만)

그 아이와 같이 술을 마시고 싶었다.

그의 핸드폰 번호가 내 핸드폰 10번에 저장되 있다. 

그의 번호정도는 외워 두어도 되었지만 왠지 그렇고 싶지 않았다.

그러면 안 될 것 같았다. 


공원에 돌아가서 그 자리에 앉았다.

술병과 주위에 널려 있는 담배꽁초 외에 두고 간 안주들이 없어졌다. 

소주의 병의 마개를 열고 입안에 소주를 들이 부었다. 

이제야  좀 취하는 느낌이다.


제 4 장 집으로 가는 여정.......

술병을 들이키면서 공원 시계탑에 눈길을 돌렸다.

2시간하고도 3분.

소주 세 병 반째  지독히 취해 있다. 

내 위를 가득 채우는 것은 소주 독한 알콜 기운들. 

공원을 메우기 시작한

 운동나온 부부

나처럼 취한 취객들.

구석진 자리를 찾아 담배를 빼어 무는 고딩들. 

그들을 피해 집으로 향하기로 결정했다.

비척이면서 사람들과 부딪치고 밀쳐지고, 그리고 전셋집이 있는 골목으로 접어들었다. 

독립생활은 그다지 성공적이지는 못했다.

철없는 애들처럼 이상향에 젖어 독립한 것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내 인생이 무엇인가가

변화가 생길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적어도 작은 무언가는.

26살에 가진 것이라고는 전셋집과 몇 권의 문제집 그리고 남아도는 공허한 시간과 공간.

결국은  원하던 변화는 이렇게 짧게 다가왔다. 

몸 안에서 아무런 노력조차 없이.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너무나 힘이 든다.

비틀거리는 몸체가 뭐가에 부딪쳐 툭하고 바닥으로 널부러 졌다.

 젠장........동네 양아치들.

" 씨발. 이 아줌마가.."

" 취했잖아....야.. 뒤져! "

 소주에 독한 독기가 나를 지배했지만  정신은 놓지는 않았다.

" 젠장....젠장......." 

입 밖으로 내뱉었다.

그리고는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서 집어 던졌다.

약봉투와 담배도 딸려  바닥으로 흩어졌다.

" 씨발...다 가져가 " 

비척비척............걸었다.

양아치들은 돈과 담배를 주어들고 침을 탁 뱉었다.

" 에이.. 저 씨발..! 확... "

 " 가가...술이나 먹자!!" 

바닥에는 동전과 약 있는 것을 알았지만  그냥 걸었다. 

전셋방으로 들어가 벌렁 드러누워 잠이 오길 숨을 고르며 기다렸다.


제 5 장 잠을 기다리며.........


상가 건물 이층에 있는 전세방.

1시간. 아니 이제 58분 남짓. 

잠 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찬 바닥에 그대로 누워서 천장을 바라보았다.

천장은 일정한 시간 간격으로 아래 고기집 네온사인 간판에서 흩어져 나오는 불빛에 어쩔 수 없이 침범 당하고 있다.

간혹 학원이 일찍 끝나고 돌아오면 날이면 그 빛들 때문에 짜증이 밀려들었다.

내 공간에서 내가 들어오기 전부터 당연하다고 주장하듯 번쩍이는  불빛이  증오스러웠다.

이성적으로 말도 안 되는 생각이었다...

 그래도 진정으로 네온사인 간판을 부셔 버리고 싶은 충동에 간혹 책장에 진열되어 있는 두꺼운 책들을 올려다 본적도 꽤 되었다.

창문을 열고  그것들을 향해 집어던지면 그렇게 하면 된다는 생각 그리고 너무나 자연스럽다는 느낌.

지금은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억지로 몸을 일으켜 세우고 책장으로 걸어가서 두꺼운 책들을 세 권을 꺼내 들었다. 

 힘겹게 버벅거리는 창문을 열었다

 책들의 무게가 묵직하고 버거웠지만 그만큼  네온사인 간판을 산산조각 내 줄 거라는 생각이 스치자 지극히 만족스러웠다. 

첫 번째 책을 던졌다. 

 하지만  의도와 다르게 간판과 멀리 떨어진 시멘트 바닥을 나뒹굴었다. 

 두 번째 책을 들고 창문으로 몸을 길게 뺐다.

그리고 간판을 조준해 발사했다.

이 번에는 아슬아슬하게 간판을 스쳐 지나갔다. 

세 번째 책을 들고 던지려 할 때 고깃집 주인이 책이 떨어지는 둔탁한 소리에 밖을 내다보다가 나의 모습을 발견했다. 

그와 눈을 마주쳤고 마지막 책을 사력을 다해  간판을 향해 집어 던졌다. 

책은.................

  고깃집 주인 발 앞에 조아리듯이 떨어졌다.

젠장....젠장.... 젠장.... 

신경질적으로 창문을 닫고 찬 바닥에 벌렁 누워 버렸다. 

11시 30분.

이제 잠들어야 한다.

잘 시간이 된 것이다.

그리고  스르륵 눈이 감기는 것을  오롯히 느꼈다. 

고깃집 주인이 화가 나서 방문을 미친듯이 두드리는 소리를 자장가 삼고

그냥 서서히 의식이 저 밑바닥으로 한없이 떨어지는 것을 즐겼다.

죽는 느낌이 이럴까 하는 의문을 품은 채.


 


 

'MoNaD > Story'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단편-백화  (0) 2015.10.07
단편-이별  (0) 2015.08.07
단편- 벗  (0) 2015.07.31
단편 소설 - 체온  (0) 2011.05.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