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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aD/Story

단편- 벗

벗이었다

옆에 잠든이는 여자,남자가 아닌 벗이었다

한참 후에 눈을 떠 벗이 묻는다

넌 누구지?

기막혀 말이 나오지 않았다 나는 너의 벗이다! 라고 소리쳐 주었다

그러자 벗이 더 어이없다는 듯이 쳐다보고는 겉옷을 집어 걸어간다

깨어난 곳은 방도, 집도 아닌 간신히 두 사람이 누울 정도의 비좁은 골목길

벗과 나는 왜 이런 곳에서 잠이 든거지. 냉큼 몸을 털고 일어나 벗을 쫓아 걸었다

벗은 천천히 걸으며 내가 다가오길 기다리고 있었다

어느새 나란히 걷고 있는 벗과 나

벗의 배에서 요란스런 소리가 계속 울리고 애꿎은 배만 문질러 댔다

벗의 주머니는 가벼웠고 나의 주머니는.... 아예 없었다

벗은 말없이 걷고 걷다가 공원벤치에 털썩 주저 앉았다

다시 벌렁 누워 나의 다리를 베고 누워 눈을 감는다

햇살은 길게 뻗어 간신히 나무 그늘에서 멈춰 섰다

 눈이 부시고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날

아무런 할 일 없이 벗과 나는 시간을 죽이고 있다

새가 날아와 지저귀고, 날파리들이 윙윙 주위를 맴도는 지겨운 여름 한 켠에서 지겹게 생을 살아내는 중이다

벗의 배에서는 더 이상 소리가 나지 않았고 나의 다리는 저리지 않았다

한 낮의 뜨거운 열기가 정점에 올라 사방을 달구고 또 달구었다

더위 아지랑이가 우리 벤치 아래에서도 뭉글뭉글 피어나 숨이 막혔다

벗은 그래도 뒤척임 없이 잠에서 깨어날 기미가 없다 한참을....

그렇게 한참을 누워 삶이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걸까

꿈이라도 꿔서 새로운 삶이라도 사는 걸까

해가 저물어 가면 벗과 나는 어디로 가야 할까

다시 아침에 눈을 떠도 또 다른 벤치에서 하루를 죽이게 될까

벗과 나는 세상 속에서 유일함이 증명되지 않았다

열기가 가시고 태양도 붉게 차 오르는 저녁나절 벗이 비척비척 일어나 앉는다

주머니를 뒤져 반쯤 피다만 담배를 입에 물고 찰칵찰칵 가스가 다 된 라이터를 사정없이 흔들어 불을 붙이려 애쓴다

간신히 불이  붙은 담배 연기가 왈칵 나에게 덤벼든다

초점 없는 눈으로 먼 곳을 응시하는 벗을 보면서 눈물을 흐릴 것 같다

하지만 나는 눈물이 아예없다

눈이 없다

그래서 눈물이 아예 없다

벗이 담배를 다 피우고 멀리 꽁초를 내던진다

꽁초는 멀리멀리 날아가 땅에 떨어져 빨갛게 탄다

벗의 윗옷을 집어 그의 어깨 위에 걸쳐 주었지만 겉옷은 자꾸자꾸 미끌어져 내려온다

벗의 어깨는 힘이 없다

옷의 무게를 버틸 만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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